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문단 편집) === 이후 === * 사태 와중에 [[전두환]]이 농담조로 "내가 대신 인질이 되고 싶다"고 발언을 했다.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07000/2007/09/021107000200709060676079.html|#]][[https://archive.is/vKEni|아카이브]]. 물론 반응은 영 좋지 않았다. * 사태 와중에 [[차인표]]의 글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아프가니스탄 피랍자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외국인을 도와주는 것에 아니꼬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비판하며 '배형규 목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경악스러운 말을 한 것. 때문에 바른생활 사나이로 알려져있던 차인표가 한동안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신해철]]의 "사람의 목숨이 어떤 것보다 최우선. 그러나 피랍자 분들은 돌아오면 고개를 숙이고 반성해야 한다." 라는 말과 대조되기도 했다. 이후 차인표는 이 사건에 관련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더니, 1년 후 [[http://www.tagstory.com/video/100039990|이러한 인터뷰]]에서 피랍 사건을 계기로 많은 비판을 받은 한국 개신교의 선교방식에 대해 질문을 받자 "누군가를 대표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다만 개신교의 선교 방식이 전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현재 자신이 후원 중인 양육기구는 선교가 금지된 무슬림 국가에 몰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국가에서 교회를 기점으로 하는 방식이다." 라고 입장을 바꿨다. * [[예장통합]] 총회는 2010년 95회 총회에서 배형규 목사를 '''[[순교자]]로 추서했고''', [[용인시]]에 있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영정이 모셔진 것은 물론이며 배형규 목사 순교기념비가 세워졌다. 장로회 예장통합에서 순교자를 공식 배출한 것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종교 나름의 논리라는 것이 있지만, 외부인들에게는 황당한 처사로 비칠 뿐이었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비가 아니라 기념비라고 한 이유는 죽어서 천국을 갔으니 기념할 일이라는 것이다.] 예장통합 총회에서 순교자로 지정하게 된 것도 제주노회[* 배형규 목사는 제주 출신]의 요청으로 된 것이다. [[파일:attachment/insanity-7.jpg]] 배형규 목사 순교 기념비. * 2010년 7월 23일, 생존자 21명 중 14명이 '피랍 당시 소회와 고백' 을 실은 책을 25일자로 출간한다고 보도되었다. 1명은 8월에 낸다고 한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00723182104978&p=kukminilbo|아프간 봉사단 피살 3년-오해와 진실... 가족들 엄청난 몸값 지불 호화여행 사실무근]]. [[https://archive.is/g3sjY|아카이브]]. 기사 제목만 봐도 감이 오겠지만, 저 기사는 개신교 관련 내용을 전문으로 하는 기자가 썼다. 같은 기자의 다른 기사를 [[http://kr.blog.yahoo.com/stmoon2000/2772|한 번 감상해 보자.]] 물론 [[http://media.daum.net/society/cluster_list.html?newsid=20100723182104978&clusterid=189233&clusternewsid=20100723142308847&p=kukminilbo|이런 기사]]와 같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미션라이프 기자. 앞 기사를 쓴 바로 그 기자이다. 이 기사를 보면 피랍된 개신교인들을 순교자로 포장해놨다.]([[https://archive.is/sXWjA|아카이브]]) 당연히 불쏘시개감. 같은 날 피랍자의 가족들이 엄청난 돈을 마련해서 그 돈으로 피랍자들을 구출했다는 [[개드립]]이 나돌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170076|#]] * '''그리고 2010년 7월 27일, 희생자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전쟁과 내란 등으로 위험 지역이었다."하며 "정부는 왜 그곳에 갔냐고 묻기 전에 여권 사용을 제한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위에서도 언급한 '''개신교 신자도 아닌데 사망해서 분당샘물교회에도 소송을 걸었던 사망자의 아버지'''이다. [[http://deulpul.egloos.com/3382699|#]][[https://archive.is/vutcX|아카이브]]. 이 때문에 교회가 '돈이 없다'[* 분당샘물교회 정도 되는 규모의 교회가 돈이 없을 가능성은 제로다. 통상 그 정도 규모의 교회라면 1년 예산이 수십억 단위는 그냥 넘어가기 때문.]며 보상을 안 해주니까[* 정작 같이 피랍당하고 살해된 목사의 유족들은 교회의 배상을 받았다. 단, 보상액수에 대한 양측의 의견차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정부에 소송을 걸어서 이 사건을 다시 이슈화해 교회 측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2011년 4월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정일영 부장판사)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5029743|관련 기사]], [[https://archive.is/0MjxL|아카이브]]. * 2011년 7월 31일에는 샘물교회 안에 '아프간 순교자 기념관'을 만들고 개관식을 가졌다. [[http://newsmission.com/news/2011/07/28/1111.41786.html|관련 기사]][[http://afmartyr.kr/|기념관 사이트]] 2007년 당시 전 국민적 민폐 행각을 기념관까지 만들고 그 피랍자들이 나와 신앙간증까지 하는 광경에 사람들은 한 마디로 '한심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라고 반응했다. 어떤 이는 '아예 [[성인(기독교)|성인]]으로 [[시성]]하고 [[순교자]] 축일(기념일) 날짜까지 지정해달라고 [[가톨릭]] [[교황청]]한테 요청하지 그러냐?'며 비아냥거렸다.[* 참고로 [[가톨릭]] [[교황청]]에서는 [[복자]] 혹은 [[성인(기독교)|성인]]으로 [[시복]], [[시성]]할 경우 곧바로 축일 날짜까지 지정해준다.] [[파일:attachment/insanity-8.jpg]] [[파일:attachment/insanity-9.jpg]] [[파일:attachment/insanity-10.jpg]] * 아프가니스탄 순교자 기념관을 개관하는 동시에 분당샘물교회는 순교 5주기를 기념해 <별, 순례의 길을 가다>라는 추모집도 발간했다. [[파일:attachment/insanity-11.jpg]] * 2012년 9월 5일에는 배형규 목사의 고향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이기풍 선교기념관에도 순교 기념비가 세워졌다. [[파일:attachment/insanity-12.jpg]] * 2013년 12월 한국위기관리재단이라는 개신교 연관단체의 본 사건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하며 보도자료를 발표했는데, 이 내용이 또 가관이다.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6769|참조]], [[https://archive.is/viss8|아카이브]].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 '일부 네티즌의 악의적 정보 조작으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었다'를 시작으로 '위기 상황 인식과 위기관리 역량이 결여된 현장 코디와 동행한 점'이 최악의 조건을 구성하는 한 요인으로 규정했다. * 2014년에도 인터넷 블로그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서 상습적인 신고를 한 것이 확인되었다. 네티즌 게시물 관련해서 신고를 때려서 포스팅을 블라인드를 시키게 하는 듯하다. 바로 위 사진의 건만으로도 알 수 있다. * 이 사건이 벌어진 지 [age(2007-07-13)]년이 지난 지금도 샘물교회는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는 듯, 자신들과 이 사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담겨있는 블로그/게시물, 심지어는 샘물교회에 대한 비판 없이 단순히 사건을 서술한 글, 관련 방송을 캡쳐한 글([[http://archive.is/iTEAd|아카이브]])까지도 명예훼손을 이유로 들며 무차별로 게시물 중단 요청을 하고 있다. 덕분에 잊고 있던 사건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 분노하여 게시물을 재게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깨알같이 게시물 중단 신청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해당 사건에 대한 게시글은 [[블로거]]에선 아무런 영향이 없는 듯하며,[* 블로거는 [[구글]]이 운영하며, 게시중단 요청은 해외 업체 상대로는 소용이 없다. 해외 업체는 한국 법을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 2007년에 나온 [[조선일보]] 관련 사설을 소개한 게시물마저도 모조리 신고하는 반면, 정작 '''그 링크된 조선일보 사설은 아직도 멀쩡한 것'''을 보면, 다국적 기업과 대형 언론사를 상대로는 아무 짓도 못 하는 모양이다. 이런 정성으로 차라리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했으면 어땠을까. * 이 사건을 미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화가 2014년 4월 17일 개봉되었다. 제목은 [[시선(영화)|시선]].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5257|참조]], [[https://archive.is/gyIvN|아카이브]].[* 참고로 이 영화의 연출자는 원로 영화 감독인 [[이장호]] 감독이다. 물론 이장호 감독은 이전에도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 여러 편의 개신교 관련 영화를 제작한 바가 있지만 그가 이런 개신교계의 [[흑역사]]를 미화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영화의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대표작이자 70년대 [[한국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별들의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모로 씁쓸할 노릇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서로 으르렁대는 웹 커뮤니티들 모두가 하나 되어 까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 영화 촬영 중[* 장소는 [[동남아]]로 각색한 듯하다. [[캄보디아]]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풍토병에 감염되어 베테랑 배우 [[박용식]]이 2013년 8월 사망하는 사건까지 생겼다. 이렇게 반응이 안 좋은 영화가 '''평점이 폭풍 상승했지만''' 이런 알바 풀기와 다르게 흥행은 전국 1만 수준으로 망했다. * 2021년 2월 9일 MBC [[PD수첩]]에서 [[인터콥]]의 방송하는 <목숨을 건 선교사들> 편을 방송했는데, [[https://youtu.be/4BGMPcGYZLo?t=1032|후반부]]에 이 사건을 다뤘다. 위에도 나와있듯이 인터콥은 "자기들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지만, 샘물교회 관계자와 당시 박은조 담임목사는 "현지 안내를 맡았던 선교사가 인터콥에서 훈련을 받았다"며 "해외 파송을 교회에서 직접 보낼 수 없어, '''중간 단체가 껴야 한다'''"며 인터콥의 개입을 인정했다. 심지어 피랍인원 중에도 인터콥 훈련생 소속이 몇몇 있었는데, [[광신자|잡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인터뷰에 응한 양국주 선교사는 "최바울은 해외선교에서의 핍박, 어러움을 극복하는 게 신앙이라 여긴다"며 "'''그것을 즐기는 것 같다'''"고 힐난했다. 끝부분엔 이 사태의 두 번째 희생자인 심성민의 아버지[* 방송에서는 심OO씨로 언급되며, 아버지도 실명이 나오지 않는다.]가 인터뷰에 응했다. 사건 이후 5년간 부부가 죽은 듯이 살아가야만 했고, 아내는 후각, 청각 등에도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도 "'''내 자식이라도 나라에서 나가지 말라고 한 걸 나간 거니까 잘했다고는 못한다'''"며 사건 이후 매일 일기를 쓰며 슬픔을 달랜다고 한다. 아래는 그 일기의 일부. > '''교회는 어찌하여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전쟁터에 그 많은 꽃다운 청춘의 인생들을 선교와 봉사의 미명 아래 보내에서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죽음으로 돌아오게 하여''' 그 후에 따르는 수많은 문제점과 부조화 등을 어떻게 치유, 보상할 것인가 엄히 묻노니 교회와 그 책임자는 여기에서 파생된 모든 일들에 대하여 응분의 책임을 지고 보상토록 해야 한다.[br]보내어진 그네들은 약간의 그곳 언어들이나 풍습에 대한 교육을 받았을진 모르나 '''[[안전불감증|안전에 대비한 필요한 교육들은 없어]]''' 제일 중요한 과제를 빠뜨렸다. *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정권을 잡고]] 한국에 협력을 요청한 와중에 연합뉴스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인터뷰에서 파병 한국군 살해와 샘물교회 피랍사건에 대해 묻자 "자결권에 따라 우리 권리를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다"고 주장하며 "이제 과거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 게 시급한 문제"라고 얼버무렸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23137800704?input=1195m|#]] * 미국은 이 사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 협상했다는 것에 굉장히 실망했다고 한다. [[https://m.yna.co.kr/view/AKR20211123030300071?section=international/all|#]] 하지만 10년도 안 가 미국이 그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나려고 하면서 차츰 탈레반이랑 협상하던 탓에 이젠 미국에서도 잊혀진 일이다. 결국 2021년 미국은 20년 동안 엄청난 돈과 인력을 들여 헛된 전쟁을 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군 철수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항목 참고. * [[Why?]] 시리즈 <<현대사회의 변화>>편에서는 해당 피랍사건에 대해 탈레반이 외부세력의 개입에 불만을 품었다고 설명하지만 샘물교회의 불법입국이나 기념관 건립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 2022년 3월 6일, [[이근 우크라이나 의용군 참전 논란]]이 터지면서 이 사건이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 2023년 1월 18일에 개봉한 영화 <[[교섭(영화)|교섭]]>은 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 [[초록색 꽃: 스피드 에이전트]]에선 성물교회로 표현되며 [[테러조직]]으로 나온다. [각주] [[분류:2007년/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사건사고]][[분류:재외한국인 사건사고]][[분류:인질극]][[분류:아프가니스탄의 사건 사고]][[분류:한국-아프가니스탄 관계]][[분류:탈레반]] [include(틀:포크됨2, title=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d=2023-02-20 21:44:5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